
멀티 드라이버의 시대
요즘 이어폰 시장을 보면 드라이버 개수가 하나의 '스펙'처럼 소비되고 있다.
마치 드라이버가 많을수록 더 좋은 소리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이버가 늘어나면서 얻은 것도 분명 있다.
여러 드라이버가 각자의 주파수 대역을 나누어 담당하면, 각 각의 유닛이 보다 효율적인 영역에서 동작할 수 있다.
저역은 더 깊고 단단하게, 고역은 더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다. 보컬의 미세한 배음이나 심벌의 잔향처럼 작은 정보까지 보다 또렷하게 표현하고, 전체적인 해상도와 공간감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드라이버 개수가 늘어난다고 무조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역을 나누는 순간 크로스오버가 필요해지고, 크로스오버가 늘어날수록 위상(phase) 정합 문제가 생긴다.
각 드라이버가 담당 대역에서는 좋은 소리를 내더라도, 이어지는 지점에서 위상이 어긋나면 소리가 갈라지거나
특정 대역만 튀어나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생긴다.
결국 드라이버 개수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튜닝)했느냐인데,
드라이버가 많아질수록 튜닝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와 상호작용은 복잡해진다.
개수를 늘리는 것 자체는 원가와 마케팅 포인트를 만들기 쉽지만, 그걸 하나의 소리로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드라이버 수가 많은데도 오히려 소리가 산만하거나 피곤하게 들리는 제품들도 적지 않다.
쉘이 소리를 만든다
드라이버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 쉘(shell)이다.
흔히 이어폰의 소리는 드라이버와 튜닝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쉘의 소재, 내부 공간의 형태, 음도관(사운드 튜브)의 길이와 경로, 벤트(공기구멍)의 위치와 크기 같은 요소들이 최종 소리를 결정짓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드라이버라도 쉘의 내부 구조와 음향 경로에 따라 소리는 달라진다.
내부의 반사와 공진, 소재의 진동 및 감쇠 특성이 음색에 영향을 주며, 귀와의 밀폐도 역시 저역을 비롯한 전체적인 밸런스를 좌우한다. 쉘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드라이버의 소리를 완성하는 하나의 음향 설계다.
즉 쉘은 단순한 외형이나 착용 파츠가 아니라,
드라이버가 만들어낸 소리를 마지막까지 완성하는 하나의 음향 구조물이다.
결국 남는 것
드라이버 개수를 늘리고 쉘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음악을 더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 그런데 가끔은 이 목적이 뒤바뀌어, 소리를 위한 소리, 스펙을 위한 스펙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본다.
좋은 음악에는 좋은 이어폰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지만, 좋은 이어폰에는 좋은 음악이 필요하듯.
좋은 곡은 카세트테이프로 들어도, 값싼 이어버드로 들어도 감동을 준다.
음악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곡 자체와 그것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이어폰은 다르다.
아무리 정교하게 튜닝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이어폰이라도, 그 안에 담을 좋은 음악이 없다면 존재 이유를 잃는다. 이어폰은 결국 도구이고, 도구는 그것을 채울 콘텐츠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드라이버 개수와 쉘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도 결국 이 지점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직접 들어보고, 선택하고, 즐겨라.
스펙 시트도, 리뷰도, 자칭 전문가의 훈수도 참고는 될 수 있어도 결정이 될 수는 없다.
무엇이 좋은 소리인지는 결국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며 함께 들었던 몇 곡을 나누며, 글을 마친다.
Chris Cornell - Nothing Compares 2 U (Live At SiriusXM/2015)
A Perfect Circle - Eat The Elephant
Sheena Ringo - おだいじに - Odaiji Ni -Please Take Care
Slaughter To Prevail - Conflict
Chopin: Études, Opp. 10 & 25 - Chopin: 12 Etudes, Op. 10: No. 3 in E Major "Tristesse"
멀티 드라이버의 시대
요즘 이어폰 시장을 보면 드라이버 개수가 하나의 '스펙'처럼 소비되고 있다.
마치 드라이버가 많을수록 더 좋은 소리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이버가 늘어나면서 얻은 것도 분명 있다.
여러 드라이버가 각자의 주파수 대역을 나누어 담당하면, 각 각의 유닛이 보다 효율적인 영역에서 동작할 수 있다.
저역은 더 깊고 단단하게, 고역은 더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다. 보컬의 미세한 배음이나 심벌의 잔향처럼 작은 정보까지 보다 또렷하게 표현하고, 전체적인 해상도와 공간감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드라이버 개수가 늘어난다고 무조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역을 나누는 순간 크로스오버가 필요해지고, 크로스오버가 늘어날수록 위상(phase) 정합 문제가 생긴다.
각 드라이버가 담당 대역에서는 좋은 소리를 내더라도, 이어지는 지점에서 위상이 어긋나면 소리가 갈라지거나
특정 대역만 튀어나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생긴다.
결국 드라이버 개수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튜닝)했느냐인데,
드라이버가 많아질수록 튜닝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와 상호작용은 복잡해진다.
개수를 늘리는 것 자체는 원가와 마케팅 포인트를 만들기 쉽지만, 그걸 하나의 소리로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드라이버 수가 많은데도 오히려 소리가 산만하거나 피곤하게 들리는 제품들도 적지 않다.
쉘이 소리를 만든다
드라이버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 쉘(shell)이다.
흔히 이어폰의 소리는 드라이버와 튜닝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쉘의 소재, 내부 공간의 형태, 음도관(사운드 튜브)의 길이와 경로, 벤트(공기구멍)의 위치와 크기 같은 요소들이 최종 소리를 결정짓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드라이버라도 쉘의 내부 구조와 음향 경로에 따라 소리는 달라진다.
내부의 반사와 공진, 소재의 진동 및 감쇠 특성이 음색에 영향을 주며, 귀와의 밀폐도 역시 저역을 비롯한 전체적인 밸런스를 좌우한다. 쉘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드라이버의 소리를 완성하는 하나의 음향 설계다.
즉 쉘은 단순한 외형이나 착용 파츠가 아니라,
드라이버가 만들어낸 소리를 마지막까지 완성하는 하나의 음향 구조물이다.
결국 남는 것
드라이버 개수를 늘리고 쉘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음악을 더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 그런데 가끔은 이 목적이 뒤바뀌어, 소리를 위한 소리, 스펙을 위한 스펙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본다.
좋은 음악에는 좋은 이어폰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지만, 좋은 이어폰에는 좋은 음악이 필요하듯.
좋은 곡은 카세트테이프로 들어도, 값싼 이어버드로 들어도 감동을 준다.
음악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곡 자체와 그것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이어폰은 다르다.
아무리 정교하게 튜닝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이어폰이라도, 그 안에 담을 좋은 음악이 없다면 존재 이유를 잃는다. 이어폰은 결국 도구이고, 도구는 그것을 채울 콘텐츠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드라이버 개수와 쉘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도 결국 이 지점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직접 들어보고, 선택하고, 즐겨라.
스펙 시트도, 리뷰도, 자칭 전문가의 훈수도 참고는 될 수 있어도 결정이 될 수는 없다.
무엇이 좋은 소리인지는 결국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며 함께 들었던 몇 곡을 나누며, 글을 마친다.